처음 봤을 땐 그냥 먹먹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생각납니다. 영화 ‘밀양’ 얘기예요. 2007년에 나왔지만, 2025년인 지금 봐도 전혀 낡지 않았어요. 오히려 지금 보니 더 깊이 와닿는 장면들이 많더라고요. 예전엔 슬픈 이야기로만 느꼈는데, 이제는 그 여자의 마음이 조금은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작품 정보
• 감독: 이창동
• 출연: 전도연, 송강호
• 개봉: 2007년
• 장르: 드라마
• 러닝타임: 142분
영화 줄거리 (스포일러 포함)
주인공 신애는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어린 아들 준과 함께 경상남도 밀양으로 내려옵니다. 그곳은 남편의 고향이기도 하고, 아무도 그녀를 모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낯선 도시에서 피아노 학원을 열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신애는, 아직 남편을 잊지 못한 채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실을 견디려 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아들이 납치당하고, 끝내 숨진 채 발견된 겁니다. 신애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내립니다. 평범한 일상조차 끔찍한 기억으로 얼룩지고, 그녀는 삶의 의지를 잃어갑니다.
이후 신애는 극심한 상실감 속에서 교회에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씩 안정을 되찾는 듯 보이던 어느 날, 신애는 아들을 죽인 범인을 직접 마주합니다. 그가 신에게 용서받았다고 고백하는 순간, 신애의 마음은 또 한 번 산산이 부서집니다. 자신은 아직 용서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그날 이후, 신애는 점점 자신을 파괴하기 시작합니다. 약국 장로를 유혹하려 들기도 하고, 아무 말 없이 교회를 떠나기도 하며, 타락한 모습으로 신 앞에 자신을 보여주려 합니다. 그 모든 행동은 어쩌면 ‘나를 봐달라’는 절박한 외침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화는 파멸로 끝나지 않습니다. 정신과 입원 치료를 거친 신애는 퇴원 후, 다시 밀양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느 날, 마당에 의자 하나를 두고 혼자 거울을 세워놓은 채 머리를 손질하는 그녀. 처음으로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모습’을 정리하려는 이 조용한 행동은, 아주 작은 변화의 시작처럼 느껴집니다.
곁에서 조용히 거울을 들어주는 남자 종찬. 늘 그녀의 뒤에 있었던 그 사람은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으로 그녀의 정면에 서 있습니다. 어쩌면 신애는 지금, 처음으로 자기 자신과 누군가를 ‘마주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물 중심으로 본 이야기
신애는 외적으로는 강인해 보이지만, 사실은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늘 의식하는 사람입니다. 남편과의 관계도, 자신의 재정 상황도 허상 위에 세워져 있죠. 그녀가 마주한 비극 이후, 종교는 버팀목처럼 등장하지만 결국 또 다른 허상이 되어버리고, 그녀는 스스로를 더 깊이 파괴하게 됩니다.
상징과 연출
이 영화에서 '햇볕'과 '유리창', '거울'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초반에는 유리창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며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렸던 신애가, 마지막엔 거울 앞에 앉아 스스로 머리를 자르며 자신을 직면하죠. 이 변화는 인물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핵심 장치입니다.
기억에 남는 장면
• 마당에서 햇볕을 받으며 머리를 자르는 라스트 신
• 교도소 면회 장면에서 신애의 절망감이 폭발하는 순간
•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도움을 주지 못했던 종찬의 무력함
• 서로를 향한 진짜 웃음이 오가는 마지막 대화
아쉬운 포인트
영화 평론가들 사이에서 엄청난 명작으로 평가 받는 영화이지만, 아주 조금 아쉬운 점도 있긴 합니다.
감정선이 너무 무거워 관객에 따라 호흡이 어려울 수 있고, 상징이 많은 만큼 이야기가 쉽게 와닿지 않는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특히 후반부의 상징적 연출은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있습니다.
한줄평
이 영화를 아직도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엄청난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