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사는 일'에 대해 질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물음에 아주 깊고도 아름답게 응답합니다.
잠깐 시간을 내어 끝까지 읽어보시면, 이 영화를 더 깊이 이해하고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전쟁이 앗아간 것들, 그리고 남겨진 자의 몫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원작·각본·연출을 모두 맡은 작품으로, 2023년 7월 일본에서 개봉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 아래, 11세 소년 ‘마히토’가 전쟁으로 어머니를 잃은 뒤 깊은 상실과 혼란을 겪으며 시작됩니다.
도쿄를 떠나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생가, 즉 ‘아오사기 저택’으로 이사하게 된 마히토는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 낯선 감정 속에서 점차 마음을 닫아갑니다. 친구들과도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새어머니 나츠코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한 채 그는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낯선 세계로의 초대, 내면을 마주하는 모험
그러던 어느 날, 마히토는 저택 근처의 숲 속에서 파란색 왜가리와 마주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이 왜가리는 말하는 존재로, 마히토를 오래된 석조탑으로 이끕니다. 탑의 문을 연 마히토는 현실과 전혀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가고, 그곳에서의 모험은 곧 그의 내면 깊은 상처와 마주하는 여정이 됩니다.
이 세계는 마히토가 떠난 현실과는 시간의 흐름도, 공간의 질서도 전혀 다른 곳입니다. 이곳에서 그는 키리코, 히미, 인코 대왕, 대백부 등 각기 다른 상징적 인물들과 만나며 삶과 죽음, 상실과 선택, 공존과 책임에 대해 배워갑니다.
성장의 본질은 '선택'에 있다
작품 후반부, 마히토는 ‘대백부’라 불리는 신비한 노인과 대면하게 됩니다. 그는 마히토에게 다음 세계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건네지만, 마히토는 결국 현실 세계로의 귀환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는 이전과는 다른 눈빛으로, 자신에게 손을 내민 나츠코의 손을 꼭 잡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귀환이 아니라, 자기 삶을 다시 살아내기로 결심한 선택의 선언이자, 이제는 고통을 껴안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으로 읽힙니다. 제목이 묻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마히토 나름의 대답이었던 셈입니다.
감상 후기
압도당했습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공개 전 어떠한 예고편이나 줄거리도 공개하지 않는, 이례적인 ‘광고하지 않는 광고’로 입소문만을 의지했습니다. 그 결과 개봉 직후 저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마주하게 될지 짐작할 수 없었고,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채 극장 문을 통과했습니다.
영화는 전쟁이 막 시작된 일본의 한 마을 풍경을 차분하게 묘사하며 시작됩니다. 어린 마히토는 어머니가 입원 중이던 병원에 불이 나면서 사랑하는 이를 잃고,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으로 향합니다. 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전시의 무거운 공기와 소년의 상실감은 ‘바람이 분다’에서 전쟁 후 일상을 그린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중반부부터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결을 띱니다. 마히토는 저택 안 탑 안에서 신비로운 이세계로 발을 들입니다. 그곳에서는 생과 사가 동시에 존재하는 듯한 풍경이 펼쳐지고, 왜가리가 안내하는 길 위에서 현실과는 다른 법칙을 체험합니다. 이 장면은 ‘벼랑 위의 포뇨’처럼 현란한 색채와 강렬한 이미지를 앞세워, 서사적 통일성보다 시각적 충격을 택한 듯한 인상을 줍니다.
전체 플롯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초기 판타지 작품을 연상시키지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나 ‘벼랑 위의 포뇨’처럼 구체적 이야기보다는 이미지의 잔상이 오래 남습니다. 실제로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영상미는 때로 탄성을 자아낼 만큼 압도적이지만, 뒤돌아보면 세부 설명이 부족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주인공 마히토의 내면 묘사는 더욱 절제되어 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과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겪는 충격적인 사건은 소년에게 깊은 내적 갈등을 암시하지만, 그 감정선은 사건을 훑고 지나가는 정도로만 다뤄집니다. 대신 관객은 마히토가 친구들과 부딪치고, 때로는 정서적 불안을 겪는 짧은 장면들 속에서 소년의 진심을 어렴풋이 읽어낼 수 있습니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은 1937년 출간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원작 소설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 중일전쟁이 발발해 언론과 출판이 억압받고 있던 시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억압 속에서도 인본주의 정신을 지키고자 했던 작가 정신이 화면 너머로 흐르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명료한 해설이 아니라, 관객이 스스로 감각하고 사유하도록 남겨진 숙제처럼 느껴집니다.
정리하며
결국 이 작품은 화려한 그림책을 넘어서 ‘느낌과 사유’를 경험하도록 설계된 영화입니다. 감상을 말로 풀어내기보다, 극장 조명이 꺼진 뒤에도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입니다. 이야기의 빈칸을 직접 채우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동시에,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임을 깨닫게 됩니다.
한줄로 정의하자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눈부신 영상에 압도당하고, 때로는 허를 찔리며, 결국 화면 너머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듭니다.